불티 속에서 태어나 죽음으로부터 돌아오는 불새, 불사조 혈족은 화염이라는 파괴적인 힘을 다룸에도 질서와 순리의 수호자로 이름이 높다. 우주 자연의 섭리와도 같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독특한 생태를 지닌 불사조 혈족이었고 가루드는 그 안에서도 현명하고 고고한, 더불어 우아하면서도 온화한 성정을 지닌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지닌 힘의 비할 데 없는 강력함, 그럼에도 짧게 사는 작은 것들에 대한 애정을 지닌 이 강대한 존재는 무수히 많은 신화와 역사 속에 그 이름을 남겼다.
그렇지만 균열이라는, 그녀의 오랜 삶에도 목격된 적 없는 미증유의 재난은 견딜 수 없는 수준의 무언가여서 가루드는 자신이 사랑하던 세계뿐 아니라 동족들마저 모두 잃었다. 하지만 가루드는 파괴되지 않았다. 그녀의 힘도, 정신도 균열에 굴복하지 않았다. 지구로 넘어온 가루드는 여전히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과 질서와 순리에 대한 수호를 다짐했고, 인신이라는 존재를 목도하며 생각한다. 어쩌면 지나온 기나긴 세월보다 지구에서 만난 이 놀라운 존재를 만난 찰나가 더욱 길고 깊을 수도 있겠다고.
